누구를 뽑든 여론은 45% 대 55%로 갈릴 것 같다. 누가 하든지 반대하는 쪽이 55%일 확률이 높다.
50%의 지지를 받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퍼거슨 감독도 쉽지 않을 것
정몽규 (2024년 7월 5일 일부 매체 대상 간담회 중)
7월 8일 오전 10시.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전날 급작스럽게 알려진 국대호의 새 사령탑이 선임되었다는 소식의 후폭풍이 거세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내놓은 답변은 돌고돌아 홍명보 감독이었다. 비록 내 자신이 축구에 대해서는 일반인 수준에 불과한 한 사람일지라도 전후맥락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면, 이날의 발표는 한국축구 자체가 몇몇 집행자들에 의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순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그리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 잘못된 선례와 불통이라는 오명만 남긴 대한축구협회
이임생 기술이사가 진행한 8일 오전 브리핑과 정몽규 회장이 견해를 밝힌 5일 인터뷰의 내용에서 대한축구협회의 민낯은 여실하게 들어났다. 정확하게는 이번 선임과정 전체가 그러했다. 어디하나 시원한 구석이 전혀 없다. 이쯤되면 뻔뻔하다고 해야할까? 이토록 뻔한 수를 여러차례 써먹고도 내놓은 견해 까지도 진정성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들은 현재 대중과 미디어 환경을 제5공화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불과 5개월 전이었다. 아시안컵 대참사가 일어나고 뒤를 이어 파리 올림픽까지 우리 축구 대표팀은 박살이 나버렸다. 그런데도 그들이 내놓는 해명과 견해는 늘 한결 같다. 여러 축구 전문 매체와 미디어들이 한결같이 부르짓던 질문이 무엇이었나? '대체 지난 5개월동안 무엇을 한거냐?' 이다. 한차례 파동이 지나간 이후 다시 진행된 2차 과정만 놓과 봐도 2개월이다.그리고 결정된 이번 선임발표의 맥락 또한 그러하다. 한국 축구에 무엇이 더 좋은지, 무엇이 더 옳은 길인지에 대한 끝없는 고민 끝에 내린 것이 고작 국내파였고, 이를 대승적 차원이라 포장해서 리그를 진행중인 팀의 감독을 무릎꿇고 빌다시피 요청했다면서 강탈해가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국가 대표팀에 앞서 뿌리이자 밑걸음은 자국 리그이다. 밑걸음이 튼실해야 훌륭한 인재들이 성장하는 것인데, 일국의 축구대표팀을 관장하는 협회라는 곳의 행정 절차는 묘하게 옆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더 안좋은 의미로)
무엇보다 이번 과정에서 남긴 가장 큰 오점은 '공정성의 훼손'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임하는 과정 자체가 이렇게나 불친절하고 불공정한 내용으로 찍어 누르듯이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면, 대체 브리핑은 뭐하러 하는가? 과거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 당시 김판곤 감독의 브리핑에서 보고 배운게 고작 이거란 소린가? 세부적으로 설명만 잘해가지고는 안된다. 납득이 될만한 근거와 이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전혀 없다. 대략 20분 남짓 동안 지켜본 브리핑의 결론은 '발표회'라는 것에서 다시한번 비참함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비겁을 넘어선 비참함 : 2024 아시안컵과 KFA)
하물며 홍명보 감독을 내정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지난 2월. 정혜성 전 위원장 때부터 심심찮게 들려온 내용이었다. 클린스만이 싸지르고 간 오물들을 치우는데 왜 국내파가 뒤집어 씌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차라리 '결과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협회의 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국내파 감독인 점을 양해해달라'는 포석을 깔고 정공법으로 나아갔다면, 결과를 받아들이는 대중과 미디어들의 시선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리 말한들 뭘하는가. 알아들으려 하지를 않는데.
#. 몇명의 인물들이 만들어낸 한국축구 표류기
이번 선임과정을 통해 이제는 한국축구의 암흑기를 넘어 표류기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목적성도 방향성도 상실하였다. 어둡다면 불을 찾아 켜면 되지만, 그것을 해야겠다는 마음 가짐조차 들지 않아 보이는 것이 참으로 서글펐다. 척박한 환경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나와주는 것만으로 이미 고마움을 넘어섰다.
한편으로는 선임된 홍명보 감독 또한 궁금하다. 왜 그는 지금 이 시점에서 수락했는지. 무엇을 위해 국가대표팀을 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국가대표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려진 것이 있기에 조금은 알것 같다. 그럼에도 선임 몇일전에 비공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분명 이 상황이 다가올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국가대표팀 팬들에게는 애석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각자도생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노력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여기는 작태가 너무도 추악하다. 선수들의 청춘과 열정을 담보삼아 업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에 치중인 이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잘 알려진 내용이겠지만 이미 1차 선임과정에서 국내파를 염두하고 밀어 붙이던 전임 위원장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승인해버린 누구를 뽑든 여론은 45% 대 55%로 갈릴 것 같다라고 밝혔던 협회 회장의 선구안을 보자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착찹하다.
24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