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회차를 반복하다 보니 새 기분이 드는것도 왠지 덜해지는 현 상황.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 어김없이 신년은 다가왔다. 각자 소망하는 바는 다르겠으나, 그 중 일부를 차지하는 것은 건강이 아닐까? 누가 받을지 충분히 지레짐작 할 법한 시상식의 풍경마냥. 그 만큼 쌓여온 세월의 무계를 빗겨가는 것이 쉬운일이 아님에.
마찬가지로서니, 제 자리를 찾아간듯 한 귀퉁이를 꽉 들어찬 나의 건강에 관한 고민은 여전했다. '올해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보여주는 것도 사치다. 그저 살기 위해 해야한다.'라는 강박이 수시로 밀려오던 찰라였다. 다행스러운게 있다면, 질질 끌어온게 근 2~3년 정도 되버린 개인적 가쉽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적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겠지. 가뜩이나 가벼워진 주머니와는 별개로, 쌓아가야할 빌드는 첩첩산중에 다다르고 있었으니.
그래서일까? 새해부터는 동네 헬스장 죽돌이가 되어보자는 것부터 무난하게 시작해볼 수 있었다. 텅빈 곳간에 채울 곡식이 필요한 사정만큼이나 다니려는 헬스장의 이용권도 덩달아 내려가던 12월의 어느날. 작정하고 달려가 일찌감치 1월1일부로 등록을 마친 이후, 아직까지 무난하게 들락날락하며 나름 익숙해져보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실의 벽은 냉정했다. 일찌감치 소모한 몸뚱아리의 근력들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만 꽤 공들여야 한다는 멘트가 채 가시기도 전에, 낑낑 거리며 기구를 들기 버거운 모습을 보면서도, 나름 진지하게 몸 구석구석 흔적을 새겨가는 시간들과 개운하게 씻어내는 쾌감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거기에 밖으로 나와 조용히 한모금 흘려버리는 담배의 맛이 배가 되는 것이 지금처럼 낑낑 거리는게 따지고 보면 마냥 싫지만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헌데 이를 여러차례 반복하다 보니 꽤나 민감한 문제가 생겼다. 다름 아닌 연초 특유의 냄새가 코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축 늘어졌던 세포들이 깨어나는 청신호라는 반가움이 들면서도, 은근 고역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름 긴시간 끊어왔었던 적도 있었는데 직장하나 잘못 들어가서 사람 하나 개차반 내는 꼴을 못이겨 기여코 손을 대었던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게 아주 우습게 되버렸다. 돌이켜보면 전자담배가 국내에 출시되고서 부터 왠만한 기기들은 죄다 한번씩 거쳐갔던 기억이 난다. 시작은 역시 냄새에 관한 문제였다. 거기에 건강 한스푼 저으면 꽤 그럴싸한 핑계거리로 충분하다.
첫경험(?)은 아이코스였다. 2.4라고 불리는 초기모델이었던 것을 꽤 오래 사용했었다. 연초에서 갈아탄 상황이다 보니 다소 밋밋한 느낌에 연타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마이너스였지만, 적당했고 피울만했다. 근 2년 가까이 잘 쓰다 어느날 입구 홀더가 헐렁해져 충전이 불편해지면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지만. 그러다 교대로 나온 릴에 자연스레 손을 뻗은것 같다. 아이코스의 불편함이었던 번거로움을 해결하면서 연타까지 지원해준다니...! 그만하면 유레카!! 망설일 필요 없이 구매해서 잘 피웠던 것 같다. 다만 아이코스에서 느끼던 일정함이 꽤나 부족함을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여야 했다. 일관성이 없다는 것과 내구성이 마이너스에 가깝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그럼에도 질질 끌며 피웠지만 인내심도 덩달아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다 작년에 줄과 글로센스를 순차적으로 피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줄은 한두번 피우고 어딘가로 내팽겨친 이후 어디있는지 기억조차 안나지만. 글로센스는 아직까지 종종 애용하고 있다. 청소에 관한 불편함이 없다는 게 아주 맘에 들었지만 연초와 증기를 섞은 믹스방식에서 오는 빠른 소모량이 여러모로 애매했다. 피울만 하니 다되었단다. 생각보단 헤비하진 않은데... 뭔가 깨림직해지기 충분했다. 이제 남은 결론은 연초로의 회귀겠거니 싶어 무심코 한갑, 그러다 보니 다시 한갑. 이렇게 해서 연초로 스리슬쩍 복귀하게 된 셈인 것 같다.
그렇게 나름의 낛과 적절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찰라에 등장한 복병. 난감했다. 이를 어찌 해야할까? 담배는 피우고 싶고, 냄새는 싫고, 참으로 가증스런 이기심이다. 안다. 하지만 흡연자들의 공통분모 중에 같은 생각을 해본 입장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알기 때문에 짜증나고, 원망스럽지만, 어쩌겠는가. 끊기에는 끈기가 부족한 상황임을.
하지만 이번 복병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심도의 고민으로 이어져갔다. 죽돌이가 되어보자는 마음가짐에 발을 맞춰 단계를 나아가야 한다는 몸가짐이 중요시되는 현 시국에서, 이를 개의치 않고 넘기는 모습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여기에 고역을 치루어가며 몸 구석구석 운동의 흔적을 공유하고 이를 개운하게 씻어내어 상쾌함을 갖춘 상태의 기분을 느끼고 나니 아무래도 연초의 냄새와 후폭풍까지 감당하며 지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당장 금연은 못하겠다. 자신도 없고, 그만큼의 끈기도 장착되기 전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을 감당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연초 특유의 타격감과 말림을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할만한 것으로 해결을 봐야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아마도 나는 지금의 순간. 내가 쌓아가고 있는 성취감과 만족도의 기분을 망치기 싫어서 그런것일거다. 어렵지 않은 판단이다. 그간 크게 그림을 그리고, 긴 세월에 이르러 보이지 않은 순간을 향해 치닻는 것을 오랜 시간 경험해오며, 진정한 나의 성취감과 만족도에 관한 것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불과 몇주전의 기분에서라면 우습게 넘겼을 고민을 아주 심도있게 파고 보는 현 상황이 나름 긍정적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충분하리라 본다.
변함없이 운동을 마치고 일과를 치룬 뒤, 고심끝에 근래 출시한 아이코스 신모델의 보상판매를 택하여 받아온 새 기기에 스틱을 끼워 한모금 물었다. 연초와 섞여있는 정신상태가 아직까진 탁하다는 점 까진 어쩔 수 없겠으나, 건강을 선택한 빌드로 또 하나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당장은 인내가 없어 너를 택했다만, 그래도 좋다. 최소한의 장치라도 갖추고 챙길 건 챙겨보자. 이렇게 하나씩 시작하고 유지해보는게 중요한 것을 알기 시작했으니.
이렇게 깨우치며 만족하는 성취감을 조금 더 쌓아보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해보며.
20200117
SEO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