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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선

꿈의 대화 :: 그녀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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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삶의 일탈을 꿈꾸어 때가 있습니다어느날 갑작스런 벼락부자가 되거나,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받게 되는 등의 이야기들이 해당 되겠지요. 실제로 어느날, 나에게 벌어진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팍팍한 일상에 나지막한 행복을 주기 충분 합니다.  몰입감은 실로 대단한 이죠나에게만 주어진 일탈, 온전히 나에게서 귀속되는 일탈 이기에 가능한 상상

기준점은 명확 하기에, 우리는 그것에 희열과 짜릿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몇일, 여기서 우리는  여인의 일탈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일탈 해버린 삶은, 때때로 현실에서 그려보던 수준을 한참 벗어난 상황이었습니다 여파는 실로 거대하게 다가와 충격은 지금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진 셈 입니다만, 나지막한 행복이 아닌 절망감과 무기력 함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모두가 느끼는 그 감정속에 답이 있을 겁니다. 한 개인의 일탈로 넘기려 해봐도, 애써 외면해보려 해봐도, 그것이 용납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을 넘은 전체를 향한 일탈로 변이 되었다는 점일 겁니다. 자식을 위해 명문학교를 겁박 하고, 돈 벌이를 위해 대기업들을 옥죄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정부조직을 뒤흔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헌법의 기초 까지도 뒤틀어버린 그녀의 일탈은 지금껏 보고 들어오신 대로, 적나라하다 못해 스스로의 모습이 자조하게 보일 지경입니다당당하게 국민의 일원 으로 주권을 행사 했던 모습이 초라해진 오늘날의 상황은 소위 '노답'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진출처 : 비지니스포스트)



'국민 여러분들께 죽을 죄를 지었다'며 검찰청 앞에 명품으로 온 몸을 치장한채 모습을 들어낸 그녀는, 프라다 구두 한짝을 남기고 들어가서는, 곰탕 한그릇을 '' 수저 남기고 모두 비워가며 조사를 받는 중이 라지만, 그녀에게 추궁된 모든 혐의는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과 실시간 일거수 일투족이 담긴 그녀의 일탈상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의 이야기로 쌓이고 덮히고를 반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쓰레기 더미로 쌓여가는 그녀의 일탈 이야기를 외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라는 기약도 없이 내일도, 그 다음 날에도 그녀의 일탈사는 짧지 않을 시간앞에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상황 자체가 이쯤 되니, 이제는 허탈함 보다도 생소하지만 조금은 두려운 궁금증이 한가지 생깁니다.



'그녀에게 꿈같은 현실을 안겨주었던 그 꿈의 실체 어디있는 것 일까?' 

그 꿈의 실체는 지금 어디서, 무엇으로, 누구에게 전이되어 

또 다른 꿈같은 현실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것 일까?'



언제부턴가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진실에 대해 질문 보다 두려움이 앞서게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혹자들은 그만큼 나이가 들어가고, 세상을 알아가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라고 답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동감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스스로가 검열하고, 삶이 위축되어지는 것을 누군가는 바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입을 닫고, 생각을 거두는 행위 말입니다. 골리앗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역으로 다윗 조차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던 시대. 어쩌면 홍길동의 심정은 아마도 이런 심정이었겠지요. 


나아가 내가 보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 속에 가리워지고, 위장되어져버린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진실을 마주할 권리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달려있습니다. 분명히 알고 있고, 이것이 잘못된 것 또한 맞지만, 왠지모를 그 이상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아 불안해지고 두려워지는 상황속에서, 적잖은 고민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그런 점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 목뒤로 플러그가 꼽혀 있던 것이라면 일고의 여지없이 빼버리면 그만 이겠지요. 그러나 애석 하게도 선택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슈 들은 오늘도 시간을 가득 메워가기 바쁩니다.  


의외로 대통령마저 사실을 인정했고, 발빠르게 당사자들 또한 조사를 받는 중이라 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나아질 구석이 보이지 않는것은 대체 무슨 연유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질문 대신 의심 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 '어쩌면' 이라는 단어. 그 단어에 대한 결과를 이미 모두가 예측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도 없이 쌓여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핵심은 사라지고 알맹이만 남겨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닐거라 생각해 봅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일탈이 더 이상 궁금해 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히려 누가? 그녀에게 일탈을 안겨주었는지, 그녀가 꾸었던 그 꿈의 실체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이 조차도 의심일 수 밖에 없는 상황 이겠지만, 일탈로 치부 되어 버리기엔, 너무도 거대한 자괴감을 안겨준 이번 사건이, 지금 이순간,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평온하게 정리되어 가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니 말입니다. 


사견이지만, 그간 글을 써야지 싶으면서도 삶이 부산 하다는 이유로 위안 삼던 나날이 적지 않았기에, 오랜만에 적어보는 이 글들 조차, 정작 쓰면서도 편치 않은 이유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난히 추울거란 이번 겨울 만큼이나 다가올 현실이 벌써 매섭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한 두 가지의 미심쩍은 상황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오늘의 이야기속에서 출발할 것 같습니다.





20161101 

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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