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후보가 되든,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가 제대로 실천 되었을 선거가 되셨는지요? 만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문득, 물어보고 싶습니다.
지난 2017년 이후, 어쩌면 그 이전부터 기다려온 시간. 그 순간 속에 보인 찰나로 인해 만들어졌던 애매한 결과물들.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바라보다 겨우 잠든 몇 시간 뒤. 뒤척이며 겨우 일어나 살펴봤습니다. 쏟아지던 잠을 깨어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상과 바람을 넌지시 던지고 청했던 짧은 몇 시간 속에 우려는 예상 밖이 되어 두 눈에 비쳤습니다. 절충과 정도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통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순간. 오랜 시간 묵혀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걷히는데 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되돌아봤습니다. 과연 오늘의 결과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선거가 끝난 오늘은 6년 전 그날이었습니다.
허무하고 처참하게 가라앉은 그날의 시간이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무기력감 속에 죄책감이 담긴 악어의 눈물로 또 다른 바다가 만들어진 그날. 묵시했던 결과는 크나큰 절망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 한구석 한으로 자리 잡은 그날은 촛불이 되어 타올랐다는데 개인적인 생각을 이어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뀌었다기엔 아직도 제자리에 놓인 것들이 많았다는 것. 확인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데홀로기를 들먹거리며 프레임과 일관된 메커니즘적 관점으로 수 놓였던 동네의 풍경. 어떤 기능이 담긴 집을 만들 것인가 생각하기 이전, 얼마에 이 집을 팔 것인가에 집중하는 모습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줄곳 봐왔습니다. 정작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소리는 묵살된 채로 말입니다.
여러 매체에서 오늘의 결과를 두고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졌습니다. 한 매체에 출연한 어떤 분은 높아진 투표율에 대해 '촛불 이후, 지나칠 정도로 국민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던 것을 들었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생각을 더해봅니다. 결과에서 드러났듯, 동/서로 나뉜 의석에는 어쩌면, 더욱 극단으로 내몰리게 될지 모를 시대의 메시지가 읽혔습니다. '보수의 궤멸적 타격. 재건이 필요하다.' '진보의 압승. 국정 안정에 힘을 실어줬다.' 틀린 의미는 아니지만, 그 이면을 배제하여 읽기에는 공감대가 적어집니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국민이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라는 공동체이자 운명을 결정하는 행위가 정치의 근간이라면, 상식이란 교두보 위에 보편적 공감대를 찾고자 논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민주사회의 정치는 관심이자 참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나라의 운명 이전, 나의 삶에 직결되는 결과로 체감하는 것은 그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상식과 보편은 어디 가서 찾는 게 아닌, 기본으로 염두하고 시작하는 행위가 정치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과로 돌아와, 따라서 절대 권능에 가까운 힘을 부여받은 여당은 이제부터 피할 명분이 사라졌습니다. 그간 실행에 옮기지 못하거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의 상황을 더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죠. 독이 든 성배를 건네주었고 그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닳고 닳은 대사처럼, 그들에게 주어진 막강한 힘의 방향은 그만큼 지켜보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덫에서 풀려나고 싶은 상황이겠으나, 덫은 오히려 촘촘하게 자리 잡혀있던 셈입니다.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류가 변했고, 지형이 바뀌었다고 논하기 앞서, 그렇게 읍소하던 바닥 민심에게 받은 정답은 단순합니다. '국민은 개돼지'라고 내려보던 이들에게 국민은 정직하게 답변했을 뿐입니다. 불과 몇 달 만에 급조된 부실공사에서 프레임과 메커니즘이 정녕 통하리라 믿었던 것일까요? 상처뿐인 영광만 남겨졌습니다. 이로써 종북의 시대가 도래했다 옹호하는 이들은, 강남의 결과를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수 놓았던 촘촘한 덫은, 오히려 그들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돼버렸습니다.
모든 역사에는 공/과가 담깁니다. 때론 공으로 쓰인 기록이 훗날 과로 평가되며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네 삶 모두가 역사이며 이 모든 게 모여 시대를 일궈가는 것이 일상입니다. 저명하거나 한 가닥 날리는 평론가들과 정치라는 세계에 몸담았던 분들의 식견을 따라가긴 엿 부족하겠으나, 더 이상 의미를 방관하지 않는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입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시대를 맞이한 여당과 진정한 황야로 나아가야 하는 야당의 모습은 방관자로 남지 않겠다는 소견으로 이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변화하는 것이 유일한 살 방법일 테니 말입니다.
더 이상 어느 한쪽도 방심할 수 없는 결과로 남겨진 선택. 말이 아닌 행동과 결과물로 보여줘야 하는 시대로 전환된 오늘. 비통했던 그날의 바다를 보며 울고 또 울었던 순간을 되뇌어봅니다.
남겨진 한 사람으로서, 만들어간 오늘의 결과에 대해 이제는 방관이 아닌 '책임'이라는 단어를 담아봅니다.
2020.04.16
SEO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