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밖으로 나갔다. 피부과를 다녀오고, 머리를 새로이 다듬었다. 떨어져가는 향수도 새로 구매했다. 가볍게 점심도 먹고, 인파 속에서 유유히 홀로 길을 재촉했다. 시간은 분주하게 흘러갔다. 저녁 무렵 집에 도착해서는 집안일에 매진했다. 이불을 포함한 빨래부터 청소, 분리수거까지 명료하게 처리했다. 은근히 거슬리던 손,발톱도 말끔히 다듬어주었다. 쾌쾌한 집안의 냄새도 빼내고, 향긋한 오일로 분위기를 정화해나갔다. 오랜시간 부재했던 책상도 정리했다. 방전된 기기도 서둘러 충전을 먹였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되돌아보니 오늘은 들인 돈 만큼이나 참으로 알차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은 갑갑함은 달아날 줄 모른다. 잊혀지기 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휴대폰 속에 쌓여있던 데이터를 모두 모아 정리하고 폐기하면서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아직 치유가 필요하다.' 문제 의식에 관한 시발점은 '인정'하는 자세부터라고 하던가? 그날 이후 나는 군말없이 이 순간을 인정했지만, 조금 더 내면의 자아에게 이를 실토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여전히 쓰라리고 아프다. 때론 억울한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하지만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게 나의 삶이고 현재이자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다.
서프라이즈는 없다. 일상이 특별했던 시간들은 이미 떠나갔다. 다시 원래대로 되었다. 그 뿐이다. 탓하고 탓해봐야 타버린 가슴의 잿더미속에서 건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황폐해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차악일 뿐이다. 선택을 위한 고통은 감내해야겠지만 그런대로 흘러갈 앞으로의 시간속에 흩날려 보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알고 있다. 넌 지금 최선을 다해 이 순간의 아픔을 감내하고 있다고. 빛바래질 어제가 남겨질 미래의 시간을 기약하며 오늘의 물결속에 흘러가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기약을 뒤로하고, 오늘도 가라앉는 마음을 그저 심각해지지 않도록 버틸 뿐이다.
24.06.15